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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탐구생활

흙수저 판사 출신 이수진의원의 어린시절 이야기

by ┃ 2020. 12. 5.

 

이수진의원 어린시절

 

이수진 의원의 가족은 시골동네에 단 칸방에서 5명의 가족이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11살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보따리에 양말을 넣어, 동네를 다니면서 행상으로 돈을 벌며 생계를 꾸려 나가셨다. 이런 어머니가 일을 하시다가 빙판에 넘어져 다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일로 어머니는 그남아 생계를 유지하던 일 마저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수진 의원

 

그녀의 어머니는 고관절이 괴사가 되어 밤마다 우셨다고 한다. 그걸 본 이수진 판사는 일기장에 어머니의 이야기를 썼고 그 일기를 본 학교 선생님들이 전북일보에 기사를 내달라고 요구하여, 성금 모으기 운동으로 어머니가 수술을 받으셨다고 한다.

 

당시 전북일보 기사

 

그녀는 어머니의 간병과 집안일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 동안은 거의 학교를 나가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가족은 언니의 8만5천원 한달 수입으로 5명이 생활해야 했다. 생활보호 대상자라 정부미를 타서 먹었고, 학교 선생님들도 도와주실정도로 가난했다.

 

이수진 의원 판사시절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그녀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집안일을 도우면서 공부하기란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대학생활에서도 생활고에 시달리며 항상 일을 해야 했다.

 

이수진 의원


이수진 의원 판사 시절

 

이수진 의원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고, 2004년부터 2020년까지 16년동안 판사를 지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모임 조직

상고법원 찬반토론에서 공개적 상고법원 설치 반대 표명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인사제도 개선 토론회 강행

 

그녀가 판사 시절에 했던 대표적인 일들이다. 그녀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것을 보고 그들을 돕기 위해 판사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방역활동 하는 이수진의원


조두순 사건, 나영이가족의 검찰 고소 판결

 

일명 조두순 사건에서 나영이를 검찰이 조사하는 과정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배변주머니를 달고 다녀야 하는 나영이는 검찰에 출석하기도 힘들었으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검찰의 요구에 무리해서 출석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검찰은 카메라 조작 미숙으로 나영이에게 반복해서 진술하게 했다.

 

 

 

선거운동 시절 이수진의원

 

이에 나영이와 부모는 검찰을 고소했고 이때 판사가 이수진 의원이였다. 그녀는 나영이의 손을 들어 주었고 국가는 1천 3백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그때 상황에서 민간이 검찰을 상대로 승소한다는건 거의 희박한거나 다름없었다. 이사건은 약자를 돕기위해 판사가 되었다는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사건중에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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